작성날자 : 2017-03-04    조회 : 756
 
신계천기슭의 새 모습

 배밭을 떠나 왼쪽으로 세존봉, 오른쪽으로 관음련봉의 름름하고 장쾌한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쯤 가느라니 앞이 탁 트이면서 둥그런 바위들이 무더기진 넓은 개울에 연초록빛이 도는 소 하나가 발굽아래 굽어보인다. 마치 배와 같이 생겼다 하여 예로부터 이 소를 《배소》라고 불렀고 그옆에 올라선 고개를 《배소고개》라고 이름지었다.

 지난시기까지만 하여도 구룡연을 탐승하는 탐승객들은 배소고개를 힘들게 넘었지만 오늘은 신계천기슭을 에돌아 새로 뻗은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복의 웃음꽃피우며 구룡연으로 오르고있다.

 300여m에 달하는 이 탐승길이 바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아래 새로 생겨났다는 해설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걸음을 옮기였다.

 오를수록 넓어지는 구룡연골안의 경치는 벌써부터 우리를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예로부터 금강산이 자연경승의 큰 집합체, 동서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대자연의 기적으로 일러오지만 오늘처럼 탐승에 편리하게 꾸려져 자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이름떨쳐본적이 있었던가.

 지금껏 있어보지 못한 금강산의 아름다움, 그것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의 원대한 구상을 꽃피워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해발아래 마련된것이다.

 보면 볼수록,새기면 새길수록 숭엄해지는 감정에 휩싸인채 우리는 휴식장에 들어섰다.

 돌로 만든 의자들이 놓여있고 세멘트계단이 둘러서있어 수십명의 탐승객들이 한꺼번에 걸터앉아 쉴수 있게 꾸려진 휴식장은 첫 인상부터 우리에게 류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주체37(1948)년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여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솔밭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신계천의 물소리 정답게 들려오는 이 근방에 휴식장을 꾸릴데 대한 전망을 펼쳐주시던 력사의 그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영광과 기쁨에 넘쳐 얼마나 설레였을것인가.

 오랜 세월 속절없이 설레이던 신계천기슭의 이름없는 솔밭이 구룡연으로 오르는 근로자들의 등골을 적시는 땀을 식혀주는 정자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것이 바로 이때부터였으리라.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느라니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체62(1973)년 8월 내리쪼이는 무더위도 하나의 농립모로 막으시며 또다시 오시여 여기에 터를 넓게 닦고 상점을 하나 잘 지어놓고 사이다와 맥주같은 청량음료를 팔아주어야 하겠다고 하신 교시가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탐승로에 휴식장을 꾸릴 터전을 잡아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또다시 찾아오시여 터를 넓게 닦고 상점을 하나 잘 짓고 탐승객들에게 청량음료를 비롯한 여러가지 식료품들을 공급하도록 뜨겁게 이르시며 그 가지수와 봉사방법, 상품공급대책까지 하나하나 세워주신 크나큰 사랑과 배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빛나는 현실로 꽃펴났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곳이라면, 수령님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곳이라면 조국땅 끝에서 끝까지 걸으시며 락원으로 꽃피워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의도대로 구룡연입구의 차길종점과 그 주변을 잘 꾸릴데 대한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시였다.

 때로는 현지에 오시여, 때로는 전화를 거시여 자그마한 언덕과 휴식장에 놓여있는 의자 하나, 신계천을 건너간 다리 하나를 놓으시고도 탐승객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탐승로와 휴식장을 더 넓히고 다리를 현대적으로 고쳐놓으며 봉사시설을 잘 꾸릴데 대한 지시를 제시하시였으며 금강산에 대한 해설방향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4(1975)년 10월 금강산에 오르시여 앞으로 금강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섞어가면서 해설을 구수하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옛말을 들으면서 금강산에 오르면 힘든줄도 모르고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신계다리를 건너 신계천 맞은편 모래불에 이르시여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시였다.

 자신께서는 점심식사시간을 미루다가 모래불에서 검소하게 끼니를 에우시면서도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편리한 탐승조건을 마련해주시려고 걷고 또 걸으시는 위대한 장군님.

 휴식장이나 봉사시설을 하나 꾸리고 해설을 한마디 하여도 금강산을 탐승하는 근로자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그 사랑, 그 은정은 구룡연입구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우리는 휴식장에 깃들어있는 뜨거운 이야기를 가슴깊이 새겨넣으며 신계천가로 걸음을 옮겨갔다.

 《여기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시여 어버이수령님을 충정으로 받들어모신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께서 남기신 뜻깊은 사적이 깃들어있는 곳입니다.》

 해설원의 목소리가 울려나오자 우리의 눈길은 어느덧 왼쪽 개울기슭에 《오선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 멎었다.

 순간 우리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선암!》하는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사람들에게 력사의 그날의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오선암!

 주체36(1947)년 9월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금강산을 찾으신 김정숙어머님께서 구룡연으로 오르시다가 수령님께 드릴 식사준비시간이 되였다고, 금강산구경에 시간가는줄 몰랐다고 하시며 혼연히 되돌아서신 자리, 섭섭해하는 수원들을 보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버님의 식사시간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빨리 내려가자고 하시며 먼저 걸음을 돌리신 자리.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새 전설이 금강산에 아로새겨지던 위대한 력사의 그 순간이 안겨와 우리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절승경개에 흥취되여 노래절반, 웃음절반 술렁이던 탐승대오도 정녕 이 순간만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소리없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력사의 증견자로 남아있는 오선암은 지금도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을 반길듯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있고 신계천의 흐르는 물결도 그날의 사연을 못 잊어 설레이는데 숭고한 이야기를 남기신채 되돌아서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어찌하여 가슴속에 묻어두신 천하절승 금강산을 다시 찾지 못하시는가!

 우리는 걷잡을수 없이 치미는 격정을 삼키며 이름그대로 찬연히 눈부시는 목란다리에 들어섰다.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아래 건설된 목란다리(전에는 여기에 《신계다리》라는 허궁다리가 있었다.) 는 김정숙어머님께서 되돌아서신 오선암으로부터 신계천을 거슬러오르다가 개울 한가운데서 《ㄱ》자 모양으로 굽어져 장군님께서 점심 한끼를 검소하게 하신 모래불을 이어주고있다. 다리가 끝나는 모래불 오른쪽기슭에는 신계계곡의 자연기암에 어울리게 건설된 식당(목란관)이 현대적건축미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솟아있다.

 듣는것마다 목이 메는 이야기, 보는것마다 가슴뜨겁게 펼쳐지는 새 모습이거니, 우리는 목소리를 합치여 만이천봉이 울리도록 심장의 웨침을 터치고 싶었다.

 금강산의 봉마다, 골마다에 넘쳐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한 태양의 해발이여!

 그 은혜로운 사랑의 품속에 누려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이여! 더욱 찬란한 래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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