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07-06    조회 : 2
 
삼복더위속에 오르신 내금강

주체38(1949)년 7월 27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우리 나라 명산 금강산의 내금강에 력사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찌는듯 한 무더위로 하여 숨쉬기조차 가쁜 이날 력사학자들과 함께 내금강을 돌아보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

《오늘 삼복더위를 극복하면서 내금강의 경치를 구경하였는데 모두 감상이 어떻습니까?》

《수령님을 모시고 탐승을 하니 오늘같은 무더위속에서도 별로 더운줄을 몰랐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들의 무랍없는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나와 함께 탐승을 해서가 아니라 여기 내금강의 자연풍치가 유정하면서도 수려하기때문입니다.》

그러시고는 내금강은 확실히 외금강보다 산림이 더 울창하고 지형이 유순하며 경치도 특색이 있다고 하시였다.

이때 한 력사학자가 위대한 주석님께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내금강의 자연풍치는 녀성적이고 외금강의 자연풍치는 남성적이라고 일러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자신께서 보기에도 그 표현이 옳은것 같다고, 내금강은 모든 경치가 녀성적인 미를 담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래, 동무들 보기에는 내금강에서 제일 경치좋은 곳이 어디인것 같습니까?》

《만폭동인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내금강의 만폭동은 계곡중에서 경치가 제일 아름답다고,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그곳 바위들에 글을 새겨놓았다고 하시면서 긍지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내금강은 경치만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지혜와 재능을 보여주는 력사유적과 문화유물도 많이 보존되여 있어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원래 금강산에는 100여개의 사찰과 수많은 문화유적유물들이 있었는데 많은 부분이 내금강에 있었다.

장안사와 표훈사 그리고 보덕암과 삼불암도 내금강에 있었고 묘길상을 비롯한 불상들과 비석들, 돌탑, 부도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 알려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신중한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그런데 지금 이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제대로 보존관리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금강의 력사유적들을 많이 돌아보았는데 그것을 보존관리하는 똑똑한 주인도 없는것 같습니다.》

해방전에는 일제침략자들에 의하여 략탈파괴되던 이 귀중한 문화재들이 해방후에는 민족허무주의자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고 있었다.

내금강을 돌아보시면서 이러한 현상을 가슴아프게 목격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도의 일군들에게 절절한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강원도에서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연풍치와 함께 력사유적들과 문화유물들을 잘 보존관리하는 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금강산의 일만경치가 아무리 절승경개라고 해도 자연풍치가 손상되고 유적유물들이 많지 못하면 볼 재미가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문화유적유물들마다에는 우리 민족의 지혜와 슬기, 재능과 넋이 깃들어있으며 이 귀중한 문화재들을 떠나서 결코 금강산의 절경에 대하여 론할수 없다는 위대한 주석님의 가르치심은 일군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러므로 금강산의 일목일초를 애호관리하고 유용동물들을 보호증식시키며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 우리 조국의 자랑인 금강산이 세계적인 명승지로 계속 소문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마디마디 열렬한 조국애와 민족애가 차넘치는 위대한 주석님의 간곡한 당부를 가슴에 새겨안으며 도의 일군들과 력사학자들은 마음속으로 탄성을 터쳤다.

(이 땅에 수수천년 반만년의 력사가 흐르고 그 유구한 력사와 함께 파란많은 세파를 겪으며 빛을 잃어가던 력사유적유물들이 이제야 진정한 주인을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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