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08-24    조회 : 66
 
정철과 《관동별곡》

정철(1536-1593)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이름있는 시인이였다. 자는 계함이고 호는 송강이다. 정철은 16세기뿐아니라 우리 나라 중세기 문학사의 전기간에 걸쳐 가장 우수한 국문시가작품을 남긴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정철은 곡절많은 생활과정에 당대사회의 복잡한 현실과 인정세태를 어느정도 리해하게 되였는데 이것은 그의 국어시가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그는 1580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여 갔을 때 금강산을 돌아보고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 글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풍치를 생동하게 노래한 기행가사 《관동별곡》을 창작하였으며 그 이후시기에는 고향에서 살면서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등 4편의 가사작품과 80여수의 시조를 남기였다.

《관동별곡》에서 시인은 유람로정을 따라 춘천, 철원, 회양 등지를 거쳐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을 두루 구경하고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등 관동8경을 돌아보는 과정에 느낀 체험세계를 깊이있는 시적형상으로 노래하였다.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룡의 꼬리

섞여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뢰더니 보니까 눈이로다

만폭동의 폭포를 형상한 이 구절들에서 보는바와 같이 가사는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 글로써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의 기묘한 정경과 여러 폭포의 웅장하고 변화무쌍하며 경쾌한 모습 그리고 맑고 깨끗한 물과 갖가지 꽃과 나무로 조화를 이룬 자연의 황홀한 경치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듯이 그려내였다. 여기서 특징적인것은 재치있는 비유와 형용어, 시적운률을 능숙하게 적용하여 시적화폭의 생동성을 보장하고있는것이다.

사대주의사상에 물젖어있던 량반사대부들이 한문을 숭상하면서 한자시만을 《정통문학》으로 추켜올리던 때에 우리 글로 우리 나라 자연경치의 아름다움을 자랑차게 노래 부른 여기에 이 작품의 진보적성격이 있다. 특히 가사는 이처럼 장엄하고 화려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절경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다시 없을것이라는 격동된 심정을 토로함으로써 조국산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과 민족적긍지를 뚜렷이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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