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6-23    조회 : 263
 
성삼문과 대표작 《이 몸이 죽어가서…》

 

성삼문(1418-1456)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학자이며 문인이다.

자는 근본, 호는 매죽헌이다. 고위무관이였던 도총관 성승의 아들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17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집현전 수찬, 례방승지를 하였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우리 나라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참가하였으며 《훈민정음해례》편찬에도 이바지하였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은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기도하다가 탄로되여 아버지, 동생들과 함께 처형되여 《사6신》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성삼문은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락천적이였으며 틀을 차리거나 허세를 부리는것을 싫어하였다. 보기에는 부드럽고 온순해보였으나 마음은 굳세고 한번 먹은 뜻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성격과 사람됨은 그대로 작품에도 반영되여있다. 성상문이 《역적죄》로 처형되고 집안이 몰락하였으므로 그의 문학작품들은 거의다 없어지고 극히 일부만이 남아 후세에 전해지고있다. 작품으로 시조 《이 몸이 죽어가서…》, 《백이, 숙제의 묘에서》, 《목숨을 잃으며》 등과 저작으로 《성근보집》, 《훈세평화》 등이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평시조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 되였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이 몸이 죽어 저세상에 가서 무엇이 될것인가 하니 금강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크고 큰 소나무 되였다가 흰눈이 온 누리에 가득한 때도 자기혼자만은 푸르싱싱하리라고 한 이 시조는 죽어서도 변치 않을 굳은 절개를 노래하고있다.

이 시조에서 《봉래산》은 온갖 꽃이 만발하고 폭포소리 장엄한 한여름의 금강산을 가리켜 부른것이다. 시조는 성삼문이 세조의 가혹한 심문을 당하면서도 변치 않을 자기의 지조를 뜻이 짙은 시적표현들로 강조해주고있다.

시조는 봉건적충군사상을 보여준 제한성이 있으나 불의앞에 굴하지 않고 량심과 의리와 같은 도덕적인 문제를 정서적으로 뜨겁게 노래한것으로 하여 15세기의 국어시가의 우수한 작품의 하나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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