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6-28    조회 : 244
 
금란굴의 불로초

금란굴의 천정바위에서는 방울꽃 잎새같은 잎사귀가 대칭되게 붙어있는 이름모를 식물 3~4포기가 탐스럽게 자라고있었는데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푸르싱싱 살아있고 사나운 동해의 풍랑이 삼킬듯 덮쳐들어도 끄떡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왕가물에도 시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이 감로수(신선이 마신다는 이슬)를 자양분으로 하고 사는 《불로초》라고 이름지었다.

이 신기한 풀이름은 금강산과 함께 이웃나라들에 널리 전해졌다.

지금으로부터 1 000여년전에 있은 일이다. 새로 룡좌에 앉게 된 보로국의 왕에게는 새로운 근심이 생겼다. 사랑하는 외동딸의 병세가 아무리 좋다는 약을 다 써도 점점 더 악화되였던것이다.

매일과 같이 머리를 앓고있던 보로국왕에게는 문득 해동국의 신산-금강산에 불로초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튿날 그는 나라의 대신들을 왕궁에 불렀다.

《지금 말갈인들이 매일같이 쳐들어와 사직의 명맥이 풍전등화와 같은데 공주의 병세는 위독하여 래일을 바라보기 어렵게 되였은즉 국난은 안팎으로 겹친셈이요. 듣건대 해동국 신산에 <금란>이란 굴이 있고 그안에 장생불로하는 금란초(불로초의 다른 말)가 있다하니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그러자 한 대신이 엎드려 아뢰였다.

《듣자하니 금란초는 하두 신비스러운 풀이여서 누가 뜯자고 하면 곧 큰 풍랑을 몰아와 접근할수 없게 한다고하니 뜻을 이루기 어려울가 념려되옵니다.》

이 말에 왕의 얼굴색은 흐려졌고 실망과 노기로 푸들푸들 뛰였다. 하긴 그자신도 이 일이 위험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듣건대 바다길로 갔다가 무사히 돌아온자 없고 륙로로 금란굴에 이르는 련대산의 12개 돌문을 넘어선자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불로초가 내외에 알려진지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의연히 무사하랴? 그렇다고 이 모험을 사직의 안녕에 비길수는 없는것이다.

임금의 이 내심을 재빨리 알아차린 늙은 대신이 밭은 기침을 깇고는 서둘러 여쭈었다.

《옛날 맹자는 백성을 바다에 비기면서 임금을 그우에 떠있는 배라고 하였은즉 백성들은 바다요 상감마마의 귀체는 돛단 배이며 공주님의 옥체는 동남풍으로 될줄 생각하옵니다. 배가 실하고 동남풍이 불어와서 사나운 풍랑을 헤가르며 바다기슭으로 나갈수 있은즉 상감마마와 공주님의 무병장수를 가져올 금란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캐와야 지당한줄 아뢰오.》

옆의 대신들은 난색을 보이였으나 이 중대사에 주저할수 없었으므로 한결같이 《지당한줄 아나이다.》라고 되뇌이였다.

왕은 이 일을 재상이 책임지고 조처하며 랑패가 없도록 하라고 엄하게 일렀다.

그리하여 수십명의 인원들과 수많은 식량, 기자재를 실은 한척의 배가 닻을 올리게 되였다.

열흘만에 배는 금란굴에 와닿았는데 륙지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바다도 잠자는듯 조용하였다.

해적단을 책임진 안아무개는 장공인들을 작은 배에 태워가지고 자신이 직접 굴입구에 갔다.

우를 쳐다보니 과연 이상한 풀이 3~4포기나 탐스럽게 자라고있었다. 이제 손을 내밀기만 하면 자기것으로 되는것이다.

배에는 재빨리 사다리가 놓여지고 한다하는 채집명수들이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다리에 바라오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번개가 번쩍하더니 《꽈르릉》하는 뢰성벽력이 온 바다를 들었다놓았다. 도적고양이처럼 불로초를 따려고 사다리에 매달렸던 놈들이 와르르 떨어지고말았다.

놀란 안가놈은 또 다른 장공인들에게 바라오를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지가 시꺼멓게 흐리더니 소낙비가 쏟아지고 잠자던 바다는 사나운 태풍과 함께 집채같은 파도를 몰아왔다. 《쏴!》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성난 파도가 흰 이발을 갈며 들이닥쳐 삽시에 쪽배들과 도적의 무리들을 삼켜버리였다. 두번째 파도는 동굴앞에 멀찌감치 서있던 범선을 몰아오더니 칼날처럼 모가 난 금란굴의 총석정바위에 들이박아놓았다.

배는 박산이 나고 그우에 탔던 놈들은 모두 물속에 처박혔다. 물에 빠진 놈들이 바위를 붙잡으려는 순간 《쏴!》하고 세번째 파도가 밀려오더니 어지러운 이 모든것을 물속에 깨끗이 삼켜버렸다.

이윽고 바다는 아무 일도 없은듯 다시 조용해지고 하늘은 맑게 개였으며 수평선에는 아침해가 방긋이 솟아올랐다.

수천년동안 고이 간직되여온 금란초는 아무런 흠집도 없이 보존되였고 침략자들은 징벌을 받았다. 이후부터는 그 누구도 금란굴의 불로초를 넘겨보는 자들이 없게 되였으며 금란굴은 금강산을 지켜선 《초병》으로 되였다.

지금 금란굴입구 바다물밑에 엎어져있는 배바위는 바로 그때 남몰래 기여들었던 배라고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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