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9-17    조회 : 118
 
《소년소》전설

유점사에서 3리가량 떨어진 곳에는 《소년소》라고 부르는 못이 있는데 여기에는 유점사 련락원을 하던 한 소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유점사는 1 000여년간을 내려 온 큰 사찰인것으로 하여 신계사, 표훈사, 장안사들과 함께 금강산의 4대사찰로 손꼽혔을뿐아니라 금강산의 모든 사찰을 통솔하는 본사로 되였고 다른 사찰들은 본사의 지시를 받는 말사로 지정되였다. 본사는 매일 말사들로부터 그날의 불공정형을 보고 받았고 다음날에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어야 하였다.

당시에는 그 일을 련락원을 통하여 수행하였는데 유점사주지는 자기 사찰에서 매사에 책임성이 높고 일에 성실하며 동작이 날랜 그 소년에게 그 일을 맡기였다.

소년은 주지가 시키는 일이라 거역할수는 없었으나 일은 참으로 고되였다.

소년은 낮에 조금 눈을 붙인 다음 곧 사찰에서 제기되는 잔심부름을 하여야 하였고 날이 어두워지면 본사를 떠나 신계사에 들렸다가 비사문을 지나 험한 비로봉을 넘어 표훈사, 장안사에 가야 하였다. 그리고는 다리쉼을 할 겨를도 없이 곧 금장골로 해서 의무재령을 넘어 유점사의 아침종이 울리기전에 되돌아와야 하였다. 이 길은 200리가 넘었으며 내리막길보다 올리막길이 많았고 가파로운 벼랑길은 짐승도 넘나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소년은 두려움도 괴로움도 잊고 오직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줄곧 뛰여다니군 하였다.

사람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200리길을 뛰여다니는 소년의 근면성에 대하여 칭찬하며 생전에 생불을 보게  될것이라고들 《예언》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소년이 금강산호랑이를 타고 다닌다고도 말했다.

《그 비사문을 지키는 범이 있지 않아. 그 범이 소년을 등에 태워 가지고 비로봉을 넘겨준대…》

사람들의 칭찬은 대단하였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소년을 동정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주지를 두고 몰인정한 사람이라고 욕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섣달 그믐날이였다.

이해 겨울은 날씨가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래일이 설날이지만 아직 고산지대에는 한번도 얼음이 제대로 생기지 못하였다.

그런데 점심때부터 갑자기 날씨가 흐리더니 하늘이 보이지 않게 함박눈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순식간에 개골산은 하얗게 덮였으며 만물상의 기암괴석은 밋밋한 눈상이 되여버렸고 구룡동의 깊은 골짜기는 평퍼짐하게 되였다.

모두가 100년래의 큰 눈이라고 하는데 저녁때부터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쳐와 온 천지가 눈보라 울부짖는 소리에 떨고있었다.

하건만 이날도 소년은 저녁을 대충 먹고나서는 신들메를 고쳐매고 길을 떠났다.

신계사를 지나 구룡동에 들어서니 눈이 허리를 쳤다. 그러나 소년은 헤염치다싶이 하여 비사문을 지났고 안깐힘을 다 써서 비로봉에 올라섰다.

그런데 벌써 삼태성이 보이는것이 아닌가. 여느날 같으면 그는 늘 저 별을 외무재령에서 보군 하였던것이다.

《늦겠구나!》 하고 생각한 소년은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내리뛰였다. 표훈사, 장안사에서 일을 보고 외무재령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날이 푸름푸름 밝아 왔다. 소년은 죽자하고 뛰였다. 그 모습은 마치 나는 표범같이 날래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유점사를 3리가량 앞둔 한 못에 이르렀을 때 《뗑-뗑-》하는 종소리가 울려오는것이 아닌가. 소년은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았다.

설날 아침 추위는 금강산의 겨울이 비로소 닥쳐온듯 맵짰으나 소년의 누데기베옷에서는 김이 문문 피여올랐고 눈섭과 이마, 앞가슴에는 성에가 하얗게 서렸다. 누구나 소년의 이 모습을 보면 가엾은 그를 와락 끌어안지 않고서는 못견딜것이였다.

그러나 시간을 어긴 소년은 이대로 유점사에 들어갈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독기어린 주지의 얼굴이 눈앞에서 얼른거렸고 부처님도 자기를 책망할것만 같았다.

《아! 끝내 일을 저질렀구나!》

소년은 자기를 죄진 사람으로 치부하였다. 이제 사찰에 돌아가면 무사할것 같지 않았다.

《오늘이 바로 나의 명이 끝나는 날인가부지!》

이렇게 생각한 소년은 인정사정 모르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얼음진 못에 뛰여들었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길지 않은 생애는 야속한 세상에 슬픔의 흔적만을 남긴채 끝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후부터 소년이 빠져죽은 못을 《소년소》라고 부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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