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11-24    조회 : 94
 
한 어부의 이야기에서 충동을 받고

18세기의 화가 정선(1676년-1759년, 호는 겸재)은 산수화를 잘 그려 당대에 이름난 사람이다. 그는 자연풍경을 그려도 다름아닌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기 좋아하였고 특히 금강산의 절경을 그림에 옮기기에 힘썼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일대를 유람하던 때였다. 금강산의 이름난 명승, 고적들을 빠짐없이 돌아보고난 그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총석정을 보려고 통천을 향해 고성땅을 떠났다.

예로부터 고성고을에서 통천으로 가려면 험한 산발을 몇십리 에돌거나 그러지 않을 경우 뒤집어놓은 독처럼 생겼다 하여 옹천(독벼루)이라 불리우는 큰 바위등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였다.

정선은 옹천길을 택하였다. 그가 떠날 때 고성사람들은 옹천길이 매우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찰 때에는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화통을 등에 지고 부리나케 걷던 정선은 어느덧 옹천밑에 이르렀다. 땀을 훔치며 바라보니 듣던바대로 뒤집어놓은 독처럼 생긴 우람한 바위덩어리가 솟아있는데 그 밑둥은 바다물속에 잠겨있었다.

통돌로 된 큰 바위는 만고풍상 비바람을 다 겪는 사이에 씻기고 깎이고 다듬어진듯 그 겉면이 푸르스럼한 흰빛으로 반들거리는데 벼랑길 웃면은 밋밋한 벼랑이고 길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밑으로는 파도에 밀린 검푸른 바다물이 소용돌이쳤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나는 옹천길이였다. 허지만 화가다운 눈길로 옹천을 바라보는 정선은 길이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도 천연의 보루처럼 근엄하고 용맹스러와 보이는 바위의 기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정선은 옹천벼랑길에 들었다. 마침 날씨도 나쁜편이 아니여서 이따금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가 절벽우를 비치고있었다. 정선은 얼마쯤 가다가 풍채 좋은 수염발을 드리운 건장한 로인이 골통을 물고 쉬고있는것을 보았다. 로인의 곁에는 메고 가던 그물이 놓여있었다. 그가 다가가자 로인은 정선의 행색을 눈여겨 살펴보더니 《어디서 오는 길손이웨까?》하고 물었다.

정선은 자기의 신분을 밝힌 다음 지금 통천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러자 로인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옹천아래 마을에서 사는 어부인데 역시 그쪽으로 고기잡이를 나가던 길이라고 하면서 함께 쉬고 가자고 자리를 권하는것이였다.

정선은 화통을 내려놓고 앉았다.

선비행색이지만 량반티를 내지 않는 그의 행동거지에 마음이 끌린 로인은 인정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초행길이겠는데 무섭지 않으시오?》하고 스스럼없이 물었다.

《원 로인장두, 무섭기는요. 되려 범접하기 어려운 그 기상이 마음에 듭니다.》

정선은 느꼈던바 그대로의 심정을 터놓았다.

로인은 그 말에 더욱 반색을 하며 말했다.

《하긴 그 말씀이 옳소이다. 옹천에서 왜적들이 혼쌀났으니까요.》

《그래요?! 로인장, 그 이야기를 들려줄수 없겠소?》

《그야 있다마다요.》

로인은 담배 한모금을 깊숙이 빨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퍼그나 오래전인 고려말엽에 있은 일이웨다. 그때 왜구들이 성해서 남쪽지방을 로략질하다 못해 점점 기승을 부리며 북쪽으로 침습해왔지요. 왜구들은 여기 통천, 고성땅에까지 기여들어와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농가를 불사르고 닥치는대로 재물을 빼앗았소이다. 어느해 가을 왜구들이 섭곡현(통천군 송전리, 장대리일대)에 침입하여 한바탕 로략질을 한 뒤에 고성으로 밀려들고있었지요.

놈들의 행패에 격분한 강릉도(강원도)의 군사들과 금강산근처의 백성들이 해적들을 몰살시킬 태세를 갖추고 적을 치기에 알맞춤한 여기 옹천에 미리 매복했소이다.

놈들이 운암현(지금의 고성군 옹천리)에서 고개를 넘어 옹천길에 들어서자 난데없이 소리화살 한대가 <펑> 하늘중천에 날았지요. 고려군사의 싸움신호였소이다. 그러자 옹천뒤산마루와 남북의 개울가에 매복했던 우리 군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앞뒤좌우에서 적들을 들이쳤지요. 외통벼랑길에서 독안의 쥐신세가 된 왜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서로 밀치고 닥치다가 모조리 바다물에 수장되고 말았지요. 그때부터 이 고장사람들은 옹천을 왜놈들이 빠져죽은 벼랑이라고 해서 왜륜천이라고 불러오지요.》

로인의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정선은 무엇을 생각하는듯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정선은 갑자기 일어나 로인의 손목을 잡았다.

《로인장,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소.》

《아니 왜 이러시오?》 로인은 황급히 마주 일어섰다.

《그런데 로인장, 로인장은 이 고장에서 오래 살았겠는데 언제쯤이면 날씨가 사나와질것 같소?》

로인은 놀랐다.

《그건 알아서 무엇하자고 그러시오?》

《글쎄 꼭 알아야 되겠으니 한번 봐주시오.》

로인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기우뚱거리더니 저멀리 수평선쪽을 내다보기도 하고 바람결을 가늠해보기도 하였다.

《아마 석양녘에는 큰 바람이 일것 같소이다.》

《그래요?!》

정선은 로인의 말에 기뻐하며 서둘러 화통을 짊어졌다. 그리고는 위험한 벼랑길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로인은 그의 뒤를 따르면서도 끝내 의문을 풀지 못한채 옹천을 내렸다.

그날 저녁이였다. 검은 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운 가운데 늠실대는 물결우에 거연한 자태를 드러낸 옹천앞에는 사나운 바람에 도포자락을 퍼덕이며 한사람이 서있었다. 그는 정선이였다.

산악같이 밀려들어 우뢰치듯 절벽을 들부시며 흰 물갈기를 타래쳐올리는 파도속에 예나지금이나 범접할수 없는 기상을 안고 서있는 옹천은 조국땅을 지켜선 이 나라 백성들의 불굴의 기상과 억센 기개 그대로였다.

정선은 그 장쾌한 모습을 놓침없이 새기려는듯 파도속에 묻힌 옹천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정선은 조국땅에 기여든 왜적들을 바다속에 처넣은 이 나라 인민들의 애국의 넋을 안고 활달하면서도 기백있는 필치로 옹천의 파도치는 모습을 화폭우에 담았다.

한 늙은 어부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어 사랑하는 조국땅을 지켜선 우리 인민의 슬기와 용맹을 상징한 풍경화 《옹천의 파도》는 이렇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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