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12-10    조회 : 259
 
나라일이 걱정되여

우리 나라력사에서 19세기말~20세기초로 말하면 극도에 이른 봉건통치배들의 부패무능과 일제의 침략책동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정세가 심히 어려워지고있던 시기였다.

당시 도탄에 빠져들고있는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여 반일의병투쟁에 분연히 떨쳐나선 애국적유생들중에는 최익현(1835-1906년)도 있었다.

최익현이 나라와 민족을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였는가는 그가 금강산을 찾았을 때 지은 시 《나라일이 걱정되여》에도 잘 반영되여있다.

천하명승으로 이름난 금강산을 유람하게 된 최익현의 기쁨은 말할수없이 컸다.

금강산탐승을 이어가던 어느날 최익현은 별천지로 소문난 옥류동골안에 들어섰다.

수정을 녹여서 쏟아부은듯 한 옥류담이며 문양 고운 흰 비단필을 편듯 맑은 물 구슬같이 흐르는 옥류폭포, 파란 구슬을 련달아 꿰여놓은듯이 푸른 소 두개가 잇닿아있는 련주담이며 봉황새가 창공을 향해 은빛날개를 펴고 긴 꼬리를 휘저으며 하늘로 나는듯한 비봉폭포, 활짝 피여난 흰 꽃송이와 같은 천화대며 그앞에 병풍처럼 둘러선 옥녀봉…

봉우리와 골짜기, 너럭바위와 시내물, 벼랑과 울창한 숲이 조화롭게 어울리여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옥류동은 과연 소문그대로의 절승이였다.

최익현은 옥류동골안이 하도 맑고 깨끗하여 자신의 마음도 정화되는듯싶었다. 그가 옥류동의 화려한 경치에 찬탄을 금치 못하고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맑게 개였던 하늘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덮이더니 대줄기같은 소낙비가 쏟아져내렸다. 그는 차거운 비방울이 얼굴을 때려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가까이에 있는 바위밑으로 뛰여가 비를 그었다. 내리던 비는 금시 멎고 구름사이로 해가 비쳤다. 방금 내린 소나기로 하여 골짜기마다에서는 골물이 터져 흘러내렸으나 시내물과 담소들은 좀전과 다름없이 맑고 깨끗하였다.

비에 씻겨 한결 더 정갈한 자태를 드러낸 옥류동골안을 이윽히 바라보던 최익현은 문득 서울장안을 생각하였다. 당시 서울은 이곳과는 판판 다른 세계였다. 나라의 권력을 거머쥔 명성황후일당의 사대매국정책으로 하여 조선땅을 놓고 군침을 흘리던 일제와 양국놈들이 때를 만난듯이 기여들어와 서울장안이 좁다 하고 싸돌아치고있었다. 무슨 《공사》요, 《고문》이요 하는 너울을 쓴 침략의 척후병들이 궁중에 무시로 드나들며 우리 나라 내정에 함부로 간섭하고 무능한 봉건정부를 협박하여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유린하는 불평등조약체결을 강요하였다.

그런가 하면 부귀공명에만 눈이 어두운 량반사대부들은 저마끔 외세를 등에 업고 매국배족행위를 일삼고있었다. 대감님들의 으리으리한 사랑방들에서는 벼슬을 팔고사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나라의 리권들을 외국의 장사군들에게 팔아넘기는 모략들이 꾸며졌다. 나라와 겨례의 운명을 두고 통탄하는 량심적인 사람들은 철창 아니면 류배지로 끌려갔다. 서울장안은 말그대로 사대매국노들과 침략의 무리들이 살판치는 어지러운 곳이였다.

이런 서울을 두고 나라일을 근심하는 최익현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시 한수가 흘러나왔다.

 

방금 내린 비를 받아

늪물이 불어나고

바람은 안불어도

날씨는 싸늘하여라

 

이내 몸 신선세계

찾아들었나

생각하니 그림폭을

번져가는듯

 

그 누가 우뚝 솟은 바위

먼저 오를가

아슬한 구름다리

보기조차 두렵네

 

이 나라 산천

티없이 깨끗하건만

서울아 너만 어이

그다지도 어지러운고

 

시읊기를 마치고 옥류동을 내리는 그의 가슴속에는 금수강산 내 나라를 절대로 왜적들에게 짓밟히게 할수없다는 단호한 결심이 바위처럼 자리잡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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