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12-18    조회 : 221
 
승병대장과 금강산

서산대사라고 하면 임진조국전쟁시기(1592-1598년) 전국의 승병들을 지휘하여 간악한 왜적을 물리치는데 크게 공헌한 승병대장의 모습을 먼저 상기하게 된다.

그는 1520년 안주고을의 빈한한 량반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서산대사의 본래 이름은 최현응이다. 그가 서산대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그의 법호인 서산에서 온것인데 묘향산 즉 서산에서 오래동안 산 대사였기때문이다.

서산대사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비상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9살때에 어머니를 잃었고 뒤이어 10살때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의지가지할데 없는 고아가 된 서산대사는 주림과 눈물속에 성장하였고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의 참기 어려운 천대와 멸시도 뼈에 사무치도록 체험하였다. 이 모진 고통과 천대속에서도 그는 땅우에 글자를 써익혔고 책도 얻어 읽었다.

그러던 그는 뜻밖에도 안주고을의 한 군수의 도움으로 서울에 가서 공부할수있게 되였다.

서당에서 글과 무예를 익힌지 3년이 되는해에 그는 사회에 대한 울분에 사로잡혀 관료로서 출세하려던 생각을 단념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였다. 그는 이때부터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의 학자스님들을 찾아가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편 스스로 불교교리를 연구하여 30살이 되였을 때에는 많은 제자를 가진 불교계에서 이름있는 스님으로 알려졌다.

서산대사가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사명당(송운대사)을 만난것도 이 시기였다. 내금강 표훈동의 백화암에 머물고있던 서산대사와 도술을 겨루기 위하여 사명당이 누구도 모르게 시내물을 거꾸로 거슬러오르게 하면서 올라왔는데 이것을 미리 안 서산대사가 동자를 보내여  그를 마중하게 했다는 유명한 《역류강전설》도 이때에 있은 그들의 상봉을 반영한것이다. 이 전설로 미루어보아 그때 사명당이 온 나라에 이름이 자자한 서산대사와 겨루어보기 위해 여러가지로 시험해보았지만 불도에 있어서나 지략에 있어서나 그보다 못함을 알고 스스로 그의 제자가 되였음을 알수있다.

서산대사는 금강산에 머물면서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을 많이 읊었는데 그의 시 한수한수에는 그의 뛰여난 시적재능과 함께 아름다운 조국강산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뜨겁게 스며있다.

그러한 서산대사였기에 바다건너 섬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장검을 비껴차고 그길로 의주로 떠나간 왕을 찾아갔다. 그를 반가이 맞이한 왕(선조)이 《대사도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하는가?》고 묻자 서산대사는 《저는 늙고 병들어 직접 군사를 일으키기가 어렵나이다. 그러나 저에게는 각 지방에 흩어져있는 제자들이 많이 있소이다. 이들에게 호소하여 의병을 조직하고 나라를 위한 싸움에 마음바쳐 나서고저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서산대사의 애국충정에 감동한 왕은 그를 전국승병의 총사령관격인 《8도선교16종도총섭》으로 임명하였다.

서산대사는 곧 전국의 스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문을 보내였다.

《늙고 병들어 싸울수 없는자는 모두 거처하는 사찰에 남아서 조국수호와 왜적격멸을 위하여 정성껏 기도를 올리며 싸울수 있는 장정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무기를 들고 의병에 궐기하라!》

그리고는 솔선 순안 법홍사에서 1 500명의 스님들을 묶어세워 의병을 조직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명당, 처영, 령규 등 그의 제자들이 각처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서산대사의 총지휘밑에 승병부대들은 7년간의 전쟁기간 평양성탈환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왜적격멸에 이바지하였다.

서산대사는 왜적들이 일단 남으로 쫓겨가고 나라가 위급한 고비에서 벗어나자 왕을 찾아가 자기를 향산의 옛집으로 보내줄것을 제기하고 곧 묘향산의 보현사로 돌아갔다.

서산대사는 1604년에 묘향산 원적암에 모여온 제자들에게 앞으로 할바를 유언으로 남긴 후 8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스님들은 서산대사가 금강산에 와서 거처한 백화암뒤에 서산대사비를 세우고 거기에 그의 공적을 새겨넣고 그의 뼈를 묻은 부도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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