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9-09-26    조회 : 121
 
비취동의 박씨부인(2)

그 이듬해 가을이 되였다.

그 사이에 리조판서로 승급한 리득춘은 서울에 있었으나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아들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유점사부근에 와서 여러날을 찾았으나 박처사의 집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필시 연분이 아닌게로다.》하고 그만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나타났는지 박처사가 불쑥 와서 자기 집이 멀지 않은곳에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산길이 험해지더니 발을 붙이기가 어려워졌다. 한참만에 소나무, 전나무가 우거진 평퍼짐한 곳이 나지고 깨끗한 초가집 한채가 있는데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진귀한 풀들이 무성하였다. 뜰앞에는 백학이 오락가락하고 붉게 물든 단풍사이로 산새들이 날아예는것이 마치 신선이 사는 별천지같았다.

이튿날은 바로 8월 20일이라 리시백과 박소저는 례복을 갈아입고 절차에 따라 혼례를 치르었다. 그런데 밤이 되여 신부의 방에 들어간 신랑은 그만 아연실색하였다. 7척키에 허리는 한아름이 넘었고 우뚝코에 이마도 벌거졌으며 눈망울은 너무 커서 보기가 흉한데다가 얼굴빛마저 검어 그 모양이 너무나도 흉칙하였다. 그에 기겁하여 뛰쳐나온 시백은 아버지가 있는 사랑방으로 달려갔다.

《신방에 들어가 신부를 본즉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지라 너무 무서워 뛰쳐나왔나이다.》

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네 아무리 용렬하기로서니 신부의 생김새가 남만 못하다고 부모가 정해준 사람을 마다하는 방자한짓을 하느냐.》하고 크게 꾸짖었다.

시백은 할수 없이 신방에 갔으나 구석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새벽닭이 울자 뛰쳐나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런 일이 반복되였다.

사흘후에 리득춘은 신부를 데리고 서울에 가서 선조의 사당에서 례를 마치고 부인과 함께 신부의 인사를 받았다. 신부의 얼굴을 본 부인은 아연하여 말 못하고 《저런 며느리를 어떻게 한평생 슬하에 두고 보랴.》고 탄식하였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비록 못생기기는 하였으나 덕이 있고 또 도술에도 능하니 장차 우리 가문을 빛내이게 될것이요.》라고 두둔하였다.

허지만 신랑은 몇달이 지나도록 신부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외로이 지내게 된 박소저는 시아버지에게 청하여 후원에 초당을 한채 짓고 거기서 살면서 글도 읽고 도술도 익히였다.

하루는 하인을 시켜 병든 말을 300량 주고 사오게 한 다음 매일 깨 한되와 좁쌀 5홈씩 죽을 쑤어 먹이고 밤마다 이슬을 맞히게 하였다. 얼마후 말을 내다 팔았는데 원래 룡마였는지라 3만 8 000량이란 큰 돈을 받았다.

남편인 리시백이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박소저는 백옥으로 만든 연적이 룡으로 변하여 련못속에 들어갔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련못가에 나가보니 과연 백옥연적이 있었다. 그는 시비인 계화를 시켜 남편에게 그것을 가지고가서 먹을 갈아 글을 쓰면 장원급제할것이라고 전하게 하였다. 처음에 시백은 과거보는 날에 녀인이 무슨 방정맞을 소리를 하느냐고 아니꼽게 생각하였으나 연적을 보니 천하절품이라 마음을 고쳐먹고 품속에 넣어가지고 갔다. 그 연적으로 먹을 갈아 답안을 쓰니 글생각이 샘솟듯 막힘없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단연 장원급제를 한 그에게는 벼슬길이 탁 트이였다.

그럭저럭 3년세월이 지나갔다.

하루는 박소저가 시부모앞에 가서 문안을 드리고 본가집에 갔다오기를 청하였다. 허락을 받은 그는 가만히 몸을 솟구쳐 구름속에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금강산 비취동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나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틀도 못되여 박처사는 《그사이 박대받은것도 너의 운명이니 빨리 돌아가라.》고 하였다. 박씨부인은 아버지의 분부대로 다시 하늘로 날아 서울로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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