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금강산 작성날자 : 2020-06-04    조회 : 748     추천 : 1
 
선택

오늘의 선택이 래일의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중국의 연변지역에서 어지간히 이름이 있는 우리 잡지사를 소개하기 위하여 얼마전 나를 찾아온 기자는 인터뷰가 끝난 다음 여담삼아 내가 작가의 길을 선택한 동기를 물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문학도들이 흔히 말하는 《이단자》로서 미술을 전공하였으며 《신이 내린 손》으로 꽤 유명해 대학전기간 선생님들의 총애는 물론 여러 전문기관들에서 의미있는 손짓을 받아왔던것이다.

그런 내가 화가가 아니라 작가를 결심하게 된데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부모님들과 함께 다녀온 조국의 명산 금강산이 뚜렷이 자리잡고있다.

4년전…단풍이 무르녹아 더한층 아름답고 만화경처럼 호화찬란한 금강산은 그 매력에 홀딱 빠진 나를 숫총각을 놀리는 얄궂은 처녀마냥 얼이 나가게 했다.

옛사람들이 금풍이라 일러온 가을바람마저도 절경에 취한 나를 슬며시 깨우는듯 재우는듯 언듯언듯 불어예며 황홀경에로 이끌어갔다.

머리를 들어보니 천만년 지나도록 굽힐줄 모를 아아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치뚫을듯, 푸르른 동해를 박차는듯 높이도 솟았는데 봉마다 맺혀있고 끝마다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있는것이 마치도 금강산을 지키는 수호신같았다.

한편 그와는 대조되게 풀 한점 없는 넓고 끼끗한 바위들이 사방천지에 널려있는데 맑고 청청한 하늘에 높이 솟은 태양의 빛은 역광으로 비껴 그마저도 이채로움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뽀얀 물안개를 피워올리며 장쾌하고 거세찬 계절폭포들이 장관을 이루면서 금강산골안이 떠들썩하도록 가슴후련한 소리를 내고있었다.

나는 온몸에 퍼져나가는 창작적흥분을 느끼며 준비해온 화판을 서둘러 펼치고 쉬임없이 고개를 들고내리면서 구도를 잡은 다음 조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색의 세기를 높이고 색모습을 좋게 하기 위해 보색제도 써보고 아무리 애써봐도 도무지 금강산의 특이하고도 자연스러운 색갈을 맞춰낼수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또한 난감한것은 부드러운 바람결의 애무를 받으며 살랑이는 나무잎소리며 청곱게 우짖는 산새들의 노래소리, 기세차게 골안을 메우며 울리는 폭포소리들을 화판에 그려낼수 없는 그것이였다.

미술계의 《신동》으로 부모님들의 자랑이였던 내가 산수화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한채 어느덧 3박4일간의 금강산관광일정은 끝이 나버렸다.

그날밤 나는 숙소에서 이렇듯 아름다운 명산을 가지고있는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들먹이면서 붓의 한계로 하여 그려내지 못한 금강산의 천하절경을 펜대로써 온 세상에 자랑하는 작가가 되리라는 인생전환의 결심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다음날 중국으로 돌아오는 렬차안에서 나는 부모님들께 나의 결심을 말씀드렸고 동의를 받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잡지사 작가로 취직했고 금강산과 같은 조국의 명산과 현실을 소개선전하는데 모든 정열과 지혜를 쏟아부었다.

그때로부터 3년세월이 흘렀고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비록 전공은 달랐어도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달려오는 과정에 나는 일류잡지사의 사장으로 되였다.

미술가로서 그처럼 전도가 촉망되던 내가 작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동기에는 두갈래 갈림길앞에서 응당 치뤄야 할 선택이라는 피 말리는 고통도 크게 없이 어쩌면 즉흥적인것이였지만 그날의 선택에 대하여 나는 단 한번의 후회를 해본적이 없다.

추억속에서 깨여나며 나는 취재기자에게 말하였다.

조선의 명산, 금강산에 가보면 알게 될것이라고…

                                                                                     재중동포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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