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금강산 작성날자 : 2020-06-04    조회 : 365     추천 : 1
 
《야!》밖에는

인생길에 수없이 많은 갈림길중 하나를 택하여 마음의 리정표를 따라 걷는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5년전…3대째 의사전통을 이어오는 가문의 장손인 내가 의학대학을 졸업하면서 의례 택할줄 알았던 의사가 아니라 작가가 되겠다고 《중대발표》를 해 가족친척은 물론 지인들까지도 깜짝 놀래운데는 사연이 있었다.

가문의 전통과 완전히 다른 전공문제, 수입의 대소여부와 천부적재능의 유무를 떠나 작가라는 직업이 그렇듯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데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조선어에 대한 매혹때문인것 같다.

나는 중국에 사는 조선공민이지만 한족동네에서 살다보니 성년이 되여서야 우리 말과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하여 배웠다.

그 과정에 민족의 자랑 금강산을 알게 되였고 드디여 대학졸업반때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관광길에 나서게 되였다.

때는 사계절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금강산이 봄이름인 《금강》의 고운 얼굴을 씻고 여름이름인 《봉래》를 준비하고저 푸르른 단장을 서두르는 한여름이였다.

돌은 돌마다 옥이요, 물은 물마다 구슬이고 폭포는 폭포마다 뛰여내리며 안개같은 물보라로 무더위를 가셔주는데 치솟는듯 내닫는듯 우줄우줄 일어서며 다가서는 바위바위들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모습들이 하나도 없을가!

실로 자연의 모든 아름다움을 한곳에 모아놓은듯한 명승의 집합체를 이룬 금강산은 뛰여난 절승의 경개로 황홀함의 극치를 보이며 걸음걸음 나를 놀라게 했다.

물갈기 날리며 내려찧는 구룡폭포를 보면서도 넋이 나가 《야!》, 나는듯 구름우에 비껴간 비로봉을 안아보면서도 《야!》, 전망이 유명해 보이는 모든것이 감격이고 시경인 세존봉에 올라서도 《야!》, 나는 시종일관 그저 단마디 감탄일뿐이였다.

푸른 이끼 돋힌 돌에서도 향기가 풍기고 층암우를 무늬놓는 봄꽃의 웃음마저 느껴지는것이 정녕 여기 금강산에서는 무엇이나 다 아름답고 빛나 우리말을 갓 배운 나의 표현력이 너무도 부족하여 안타깝고 창피하기만 했다.

우리 말은 사물의 미세한 차이까지도 원만히 표현할수 있는 풍부한 형상적표현력을 가지고있어 《언어올림픽》이라는 명칭을 단 국제적인 《언어경기》에서 세계선수권까지 보유하지 않았는가.

특히 외부세계에서 들리는 음향이나 각종 울음소리 등을 묘사하는 의성어와 소리없는 사물의 모양을 묘사하는 의태어는 세계의 다른 언어들에 비할바없이 풍부하다.

현재 세계에는 약 2만을 헤아리는 각이한 민족들이 5천6백개이상의 서로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지만 사용인구가 5 000만명이 넘는 언어는 조선어를 비롯하여 15개정도로 국한되여있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어를 배우는 국제적열의가 점점 높아지고있는 지금 조선사람인 내가 아직도 조선어를 원만히 배우지 못해 민족의 자랑인 금강산의 절경을 《야!》밖에는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다.

3박4일간의 관광일정이 끝나고 중국에 돌아온 나는 부모님들께 《야!》밖에는 달리 표현하지 못한 금강산소감을 말씀드리고 의학대학을 졸업하면 인차 민족의 넋이고 얼인 조선어를 전문으로 배우는 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작가가 되겠다고 《중대발표》를 하였다.

그날에 호탕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와 난색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5년세월이 흘렀고 현재 나는 작가로 활동하고있다.  

지금에 와서보면 의사가 아니라 작가를 결심한 그날의 선택은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전환점이였고 금강산관광은 다시없을 기회로 되였다.

그러나 중견작가가 된 지금도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금강산의 절경앞에서 《야!》밖에는…

                                                                                          재중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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