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금강산 작성날자 : 2020-06-09    조회 : 122     추천 : 1
 
우표를 통해 금강산을 알다(1)

회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서 우표수집은 첫째가는 취미이자 또 다른 직업이라고도 할수 있다.

우표는 우편료금의 지불증서라는 단순한 목적에서 발명된 때로부터 한 나라의 사회, 문화, 경제, 자연, 인물까지도 반영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력사책》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종이보석》, 《나라의 얼굴》로까지 불리우고있다.

우표의 이러한 가치가 나로 하여금 류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였던것이다.

나는 우표와 이어진 내 인생체험가운데서 세계명승으로 널리 알려진 조국의 명산 금강산이 전하는 절세위인들의 위인상과 금강산의 황홀경에 대한 소감을 몇회로 나누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표 《삼선암》

2017년 10월 어느날 나는 인터네트홈페지 《금강산》에서 《백두산3대장군과 새 조선의 우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되였다.

글의 제목부터가 우표수집가로서의 나의 호기심을 무척 자아냈다.  

나는 글을 통하여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된 직후 건국령도로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해방된 새 조선에서 하루빨리 제나라의 우표를 가지고 마음껏 서신거래를 하고싶어하는 조국인민들의 념원을 풀어주시려 우표발행사업에 깊은 로고와 심혈을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상에 큰 감흥을 받았다.

특히 1946년 3월에 새 조선의 첫 우표인 《삼선암》을 친히 보아주시면서 나라의 주인이 된 인민들이 제나라의 우표를 가지고 해방의 감격과 서로의 건국열의를 마음껏 나누게 되였다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신 어버이수령님과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감동깊게 접하게 되였다.    

이어 나를 흥분시킨것은 새 조선의 첫 우표가 다름아닌 조국의 명산인 금강산주제의 《삼선암》이라는 사실이였다.  

해방전 나라잃은 설음속에 일제에게 우표발행권마저 빼앗기고 절경의 빛을 잃었던 금강산도 피눈물속에 바라보아야만 했던 조국인민들이였다.

그러나 조국해방의 대업을 이룩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비록 자그마하나 조선의 국호가 찍힌 첫 우표 《삼선암》을 보는 조국인민들의 가슴속에 금강산이 다름아닌 조국의 명산, 조국의 자랑으로 력력히 새겨졌으며 해방된 새 조선에서 자신들이 다름아닌 금강산의 주인, 나라의 떳떳한 주인이라는 민족적자긍심을 우표 《삼선암》을 통해 온 세상에 알리려는 조국인민들의 순결한 애국의 마음이 뭉클 어려왔다.

그 마음들에 실리여 《삼선암》으로부터 세상에 알려진 금강산주제의 우표가 오늘날에는 50여가지로서 조국의 그 어느 명산주제의 우표보다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던것이다.

이러한 감흥속에 기사를 보고난 나의 마음은 금강산을 형상한 우표수집에 대한 충동과 열망으로 이어졌다.  

사실 1999년 10월 5일 중조외교관계설정 50돐을 기념하여 조국의 금강산과 중국의 려산을 형상한 중조공동우표 2종이 처음으로 발행되였을 때 금강산과 그 주제의 우표들은 이미 나의 관심속에 있었다...

여기에 맞추어 새 조선의 첫 우표 《삼선암》을 접하게 된것이야말로 내가 금강산주제의 우표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중요한 계기라고 해야 할것이다.

                                                                                            재중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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