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3-27    조회 : 555
 
금강산과 력사인물들(2)

겸재 정선

 

정선(1676-1759, 호는 겸재)은 우리 나라 중세기 회화에서 실경산수화를 새롭게 개척하고 발전시킨 재능있는 화가이다.

정선은 1676년에 몰락한 량반집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부사라는 관직을 지냈을뿐 량반이라는것은 명색뿐이고 살림살이가 매우 어려웠다.

비록 째지게 가난한 환경속에서 성장한 그였으나 어릴 때부터 그림재간이 뛰여나 이웃들을 놀래웠으며 동네사람들의 도움으로 전문화가로 자라나 마침내 《도화서》화원이 되고 현감벼슬까지 지니게 되였다.

일생동안 그림을 그리는데 온갖 정력을 다 쏟아부은 그는 나이 80이 넘도록 눈에 돋보기안경을 몇개씩이나 끼고 초불아래서도 털끝만한 착오도 없이 그림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잘 그리였다.

당시 화단에는 도교적인 신선산수화나 봉건량반선비들의 리상향으로서의 주관주의적인 산수풍경을 그리며 다른 나라 풍경화를 모방하는 사대적인 경향이 지배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실학사상에 공감한 정선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창작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름다운 우리 조국강산을 자기 화폭에 담을 의지를 안고 방방곡곡을 편답하였다.

그는 그림소재와 묘사대상을 자체로 개척하면서 이전시기 그림이나 다른 나라 그림을 비판적으로 참고하고 좋은 점만을 받아들여 독창적인 화풍을 창조하였다.

정선은 지난날 민족적화풍으로 그린 산수화를 더욱 발전시켜 조국의 명산고적들을 직접 묘사함으로써 중세기 산수화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가로 등장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금강산을 제일 사랑하였으며 금강산의 거대한 자연의 조형미와 다양한 색조변화를 화폭에 담기 위하여 많은 고심을 하였다고 한다. 금강산의 여러 풍경들을 자연지리적특성에 맞게 변화무쌍하고 다양하게 묘사하였으며 금강산일대를 탐승하면서 그곳의 기묘한 산과 바위들의 생김새에서 선률적인 미를 찾고 그에 알맞는 선묘기법을 창조하여 절묘한 산들과 바위들의 질감과 량감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현재 그의 산수화로서는 《금강산전도》, 《인왕산제색도》, 《만폭동》, 《혈망봉》, 《너럭바위》,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전해지고있다.

그가운데서 정선이 58살이 되는 해 겨울에 그린 《금강산전도》는 금강산의 웅건하고 수려한 전경을 폭넓게 묘사한 작품이다. 화면가운데 아득히 주산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눈덮인 개골산의 여덟봉우리가 솟아있고 그 왼쪽에는 장안사, 표훈사, 정양사 등 많은 내금강의 이름난 절간들이 배치되여있다.

자유분방한 붓질로 티끌만한 손색도 없이 그린 《만폭동》과 《혈망봉》, 웅건한 기상을 죽죽 그린 《구룡폭포》 등은 자연의 생김새에 맞게 독특한 조형미와 계절미의 변화에 따라가면서 재치있게 묘사하고있다.

이처럼 정선은 비록 작은 화면이라도 구도의 폭을 대담하게 넓히고 부분에 치우치지 않으며 활달한 필치로 금강산을 비롯한 웅대한 자연의 전모를 뜻과 정서를 담아 펼쳐놓았다.

때문에 당시는 물론 이후시기 화단에서는 그의 그림에 대하여 《정선의 산수화는 장엄하고 웅건하고 호방하고 농후하다.》, 《그림이 창창하고 윤기있는것이 보기 좋다. 이것은 정선의 화풍의 특징이다.》, 《정선은 조선의 경치의 진수를 가장 잘 그린 화가》, 《중고시대이후의 조선의 제1위의 화가》라고 평하였다.

주변나라의 사람들까지도 《비로소 정선의 그림의 신묘함을 알았다.》, 《정선의 그림은 기묘하고 정묘하며 생동하여 실물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신이 도와준것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실로 그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호수, 보슬비 내리는 날 기러기떼 날으는 가을풍경 그리고 계절따라 서로 다르게 변하는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동하고 다양하게 화폭에 담았다.

정선은 우리 나라 자연고유의 소재선택과 민족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산수화풍을 창조함으로써 당시 《도화서》화원들은 물론 문인화가들속에서도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켜 그의 화법을 따르게 하였다. 하여 이시기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은 《정선파》, 《겸재파》라는 하나의 화파를 이루게 되였다.

그러한 화가들로서 조영석, 심사정, 김홍도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있으며 최북도 정선의 화풍을 본받았다고 볼수 있다.

정선이 이처럼 독자적이며 개성적인 실경산수화풍을 창조할수 있은것은 조국산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애착심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빛내이려는 피타는 노력의 결과에 의하여 이룩된것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정선의 화폭에는 한그루의 나무, 하나의 돌, 한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조국강토에 대한 화가의 열렬한 사랑이 맥박치고있다.

조선미술사에서는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회화발전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한 정선과 조영석, 심사정을 《3재》라고 부르고있다.

이렇게 정선은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의 아름다운 경치를 높은 경지에서 조형예술화함으로써 우리 나라 회화사에서 새로운 풍경화를 개척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애국적인 미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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