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5-10    조회 : 275
 
금강산에 온 넋을 빼앗긴 화가

최북(1720-1770)은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풍경화발전에 기여한 재능있는 화가의 한 사람이다. 호는 호생관이라고 하였다. 산천초목을 남달리 사랑한 그는 주로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화폭에 담은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최북이 산수화에 얼마나 정력을 쏟아부었던지 가까운 친지들은 그의 호나 이름 대신에 최산수라는 별칭으로 즐겨 불렀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호방하여 까다로운 세습이나 유교교리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권세를 휘두르는 량반사대부들앞에서 절대로 굽신거리는 일이 없었다. 더우기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창작의도를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할 때면 그가 누구이건 참지 못하고 내쏘군하였다.

한번은 조정에서도 이름이 자자한 어느 세도대감이 화려하게 꾸린 자기 집 사랑방의 병풍에 그림을 그리려고 최북을 청한 일이 있었다. 평소에 문인화(당시 량반문인들속에서 널리 류행되던 그림)를 숭상하던 대감은 최북에게 《신선도》를 그리라고 하였다.

현실세계에 없는 환상속의 신선을 그리라는 요구에 화가 울컥 치밀어오른 최북은 자기는 그리지 못하겠으니 다른 화원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대감이 노기등등하여 만일 그리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위협하자 최북은 쥐고있던 붓대로 제 한눈을 찌르면서 《나에게 눈이 없다면 신선도를 그리라고 하지 못할것이 아닌가.》하고 반발하였다.

또 언제인가는 한 벼슬아치가 그에게 찾아와 산수도를 그리되 꼭 산을 감돌아 흐르는 물을 그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최북은 제 혼자 그림을 아는것처럼 우쭐대는 그의 꼴이 하도 아니꼽게 여겨져 화판에 우뚝우뚝 선 산봉우리만 그려넣었다. 그림을 받아든 량반이 볼이 부어서 투덜거리자 최북은 《이 세상에 산을 내놓고는 온통 물인데 구태여 물을 그려서 뭘하겠소.》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그림을 한갖 집안의 치장물로 여기면서 도화서의 화원들을 업신여기는 사대부들을 미워하였다. 량반들의 비위에 맞는 그림을 그리지 않다보니 그의 살림은 늘 구차하였다. 그리하여 그렇게도 소원인 금강산유람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최북에게도 평생의 소원을 풀 기회가 생겼으니 그와 관련한 이런 일화들이 전해온다.

 

《금강산을 못보고선 최산수라 할수 없지》

 

어느날이였다. 최북은 울적한 심사를 풀어보려고 인왕산 막바지에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았다.

그가 들어서자 신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산수 마침 잘 왔네. 금방 자네 얘길하던 참이야.》

《아니 내 이야기는 왜?》

《여기 이 사람이 금강산엘 다녀왔는데 시 한수 짓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기에 만약 최산수가 금강산에 가면 모름지기 천폭의 명화를 그려가지고 왔을거라고 말하던 참이네.》

금강산 말이 나오자 최북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왔다는 친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래, 금강산이 어떻던가?》

《글쎄, 그 절묘함을 어찌 한마디로 다 이야기할수 있겠나. 내 재간으론 정말 말못하겠네. 아마 자네도 금강산을 보면 내 심정을 알걸세.》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형용할 적중한 말을 찾지 못하여 안타까와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최북은 당장이라도 금강산에 가보고싶은 충동을 누를길 없었다. 얼마나 동경해오던 금강산인가.

하지만 가난한 화원의 살림에 당장 떠나자니 로자가 문제였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그였다.

최북은 안타까운 나머지 《아, 나도 한번 보았으면.》하는 말을 입속으로 뇌이며 부르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최북을 지켜보던 친구들이 놀라서 그를 에워쌌다.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여럿이 물었다.

그러나 최북은 머리를 수그린채 아무 말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여보게들, 여직 최산수의 심정을 모르겠나? 금강산을 보고싶은 마음이 부쩍 동해서 그러는걸세.》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친구들은 최북이 벌써 오래전부터 금강산으로 가고싶은 심중을 토로해왔으나 로자때문에 번번이 뒤로 미루어왔음을 상기하였다.

이때였다. 한 친구가 좌중을 돌아보며 《호생관이 여직까지 천하명승 금강산을 못봤다면 최산수라 할수 없지. 안 그런가?》하고 물었다.

《아무렴 최산수가 아니지.》 모두다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모두 푼전을 모아서라도 최산수를 금강산에 보내는게 어떤가?》

그 친구가 다시 좌중에 묻자 《옳거니 그렇게 하세.》하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호응해나섰다. 이렇게 의논들이 되자 어떤 친구들은 괴춤에 찔러두었던 몇푼 안되는 돈을 서둘러 꺼내여 최북의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

최북은 자기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친구들의 진심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그는 이렇게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토록 소원이던 금강산유람을 떠나게 되였다. 떠나던 날 최북을 멀리까지 바래워준 벗들은 이번에 금강산에 가면 시 한수짓지 못하고 돌아온 맹랑한 친구처럼 되지 말고 세상에 으뜸가는 산수화를 많이 그려 한짐지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최북은 자기의 금강산길을 도와나선 벗들의 기대에 꼭 보답하리라 결심하고 금강산을 향해 서울을 떠났다.

 

구룡연에 뛰여든 최산수

 

최북이 통천을 거쳐 고성땅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를 맞이한 금강산의 절경은 그의 넋을 통채로 빼앗아버렸다. 천태만상의 절묘한 경치는 글로 담고 붓으로 그리기에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기이하였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동쪽을 보아도 서쪽을 보아도 제나름의 미를 간직하고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는 별천지였다.

최북은 비로소 《금강산을 보기전에는 천하의 산수를 말하지 말라!》고 한 옛사람들의 말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금강산을 자기의 화폭에 옮겨보지 못하고 최산수라는 별칭으로 불리워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최북은 서둘러 잔등에서 보짐을 내려 화구를 꺼내들었다. 늦은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리라 마음다지며 붓을 쥐였다. 그러나 그는 펴놓은 참지에 붓을 대기를 주저하였다.

천변만화하는 기암괴석과 운무에 휩싸인 수려한 봉우리들, 손을 담그면 방금 파란물이 들것 같은 푸른 소들과 옥계수 흘러내리는 계곡들에서 도저히 눈을 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이처럼 붓을 쥔채 몇시간이고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배고픔도 잊고 날 저무는것도 몰랐다. 잠자리에 누워 제정신으로 돌아와서야 그림을 그리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래일은 꼭 그리리라 마음다지군하였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하였다. 탐승길은 계속되였으나 그는 한장의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는 금강산의 명소들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구룡연에 이르게 되였다. 전설속의 아홉마리 룡이 지금도 도사리고있는듯 층층이 꺾어져내린 절벽으로 뽀얗게 물보라를 일쿠며 장쾌하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앞에서 한동안 정신을 잃고 바라보던 최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오늘만은 기어이 구룡폭포의 장관을 화폭에 옮기리라 생각한 그는 구룡연의 너럭바위우에 화구들을 펼쳐놓았다. 정작 붓을 들었으나 최북은 역시 화판으로 가져갈념을 못했다. 그는 그때에야 금강산을 유람하고도 시 한수 짓지 못한 친구의 심정이 리해가 되였다.

천하에 둘도없는 명화가라도 재현할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흠뻑 취한 최북은 그림을 그리려던 생각을 가뭇없이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폭포수만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천하명승을 보게 된 환희와 격정이 솟구쳐올랐다. 이 자리에서 죽는대도 여한이 없을것만 같았다. 자신을 더이상 걷잡을수 없게 된 최북은 환희에 웃고 설음에 울었다. 더러운 량반세상에서 수모를 당하며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사람들이 평생에 보기를 원하는 금강산을 돌아본 기쁨을 안고 깨끗이 이 세상을 하직하고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최북은 앞뒤를 잴 겨를도 없이 천갈래 만갈래로 은구슬을 뿌리며 소용돌이치는 구룡연에 뛰여들었다.

최북은 때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미친것같은 그의 행동거지를 이미부터 주시하던 길손들에 의하여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최북은 그후 화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재현하는것을 평생의 중대한 목표로 삼았다.  

그는 조국의 산천을 사랑하는 애국의 일념을 고스란히 담아 정력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최북이 그린 금강산산수화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작품은 《금강산전도》와 《표훈사도》이다. 특히 《금강산전도》는 부채형으로 된 화면에 굽어볼수 있도록 금강산의 경치를 집약적으로 묘사한 걸작품의 하나이다. 그림에는 용용히 솟은 바위들로 절벽강산을 이룬 금강산의 봉우리들이 안개와 구름속에 휘감긴 모습으로 생동하게 묘사되였다.

이외에도 그가 창작한 금강산산수화들은 기성개념이나 필법에 구애되지 않고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체험을 진실하고 유연한 필치로 그려낸 특색있는 화폭들로서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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