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03-04    조회 : 29
 
천하명산 금강산을 자랑한 양사언

양사언(1517년 - 1584년)은 조선봉건왕조 전반기에 활동한 명필가이며 시인이였다. 양사언은 자를 응빙, 호를 봉래라고 하였다.

양사언은 어릴 때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글공부에 열중하여 그 시기 사람들속에서 비범한 인재로 불리웠다.

양사언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서예가로서 리용, 한석봉, 김정희와 함께 4대명필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는 거칠것 없고 막힐것 없는 자유분방한 초서체를 잘 쓰는것이 특기였다.

그의 서체에 대하여서는 《청구야담》, 《계서야담》 등 여러 책들에 실려있다.

양사언이 천하명산 금강산에 얼마나 애정을 기울였는가 하는것은 금강산의 바위에 명산을 노래한 시와 글을 수많이 새겨 놓은것만 봐도 잘 알수 있다.

양사언은 회양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을 자주 찾았다.

만폭동에 오른 그는 금강산의 신비경을 여덟글자의 간결한 시구로 표현하고 바위에 글을 새기도록 하였다.

《봉래풍악 원화동천》

이 글을 보고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한 작가는 자기의 기행문집에 《룡이 뒤트는듯, 사자가 할퀴는듯 글씨가 풍악의 기세와 더불어 웅대함을 다투고있다.》고 썼다.

그의 호가 봉래였는데 후세사람들이 금강산을 봉래산이라고 부른것도 양사언이 바위에 이 글을 새겨놓은것과 관련되여있다.

양사언은 한때 벼슬을 버리고 삼일포에서 지낸적이 있었다. 삼일포 장군대와 련화대사이에 마치 반도처럼 호수가로 나앉은 바위산이 있는데 여기에 앉으면 삼일포가 한눈에 보인다. 여기를 후세사람들은 양봉래(양사언)가 즐겨 올라앉았다고 해서 봉래대라고 불렀다. 그리고 봉래대아래에는 호수가 보이는 작은 굴이 있는데 여기를 봉래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양사언은 인생말년에 금강산아래쪽에 집 한채를 지은 다음 《비래정》이라고 이름을 짓고 여기서 지내면서 금강산의 적지 않은 명소들에 글씨를 남기였다.

양사언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유명한 시조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그는 자기의 시 《금강산》에서 천하명승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긍지높이 노래하였다.

 

   산우에 산 솟으니 하늘우에 땅 생기고

   물가에 물흐르니 물가운데 하늘있네

   아득해라 이내 몸 허공중에 떠있는가

   신선세계 아니거니 신선도 아니여라

 

   세상사람 이르는 말 내 들었노라

   고려국에 태여나기 소원이라고…

   금강산 좋은 경치 바라다보니

   만이천봉마다 백옥이로세

 

이렇듯 양사언은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을 끝없이 사랑하고 그 감정을 유명한 필체와 시작품으로 열렬히 구가한것으로 하여 당대에는 물론 후세에도 력사에 이름을 남긴 명필가, 시인의 한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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