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03-04    조회 : 24
 
보덕암을 찾아서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온 천하에 자랑하고싶어 우리는 내금강 관광로정에 따라 보덕암을 찾아떠났다.

장안사터와 삼불암, 표훈사와 금강문을 지나 만폭동에 들어서니 수정같이 맑은 옥계수가 개울바닥의 희맑은 돌을 뛰여넘고 쏟아져내리여 구슬같은 담소와 은빛비단필같은 폭포를 이루며 저마다 재주를 부리고있었다.

만폭동너럭바위를 돌아보고 골짜기를 톺아오르니 백룡담이 우리를 반겨맞았다.

이 담소는 희맑은 바위에 둘러싸여 넙적하게 자리잡은 깨끗한 소였는데 마치도 흰 룡이 서리고있는듯 하다고 하여 《백룡담》이라고 불러온다고 한다.

백룡담을 구경하고 우리는 보덕암과 하나의 전설로 이어진 세두분이며 수건바위를 돌아보고 여기에 깃든 전설을 전해들었다.

옛날 회정이라는 스님이 금강산에 들어와서 10년을 작정하고 공부할 때라고 하니 아주 먼 옛날의 일이라고 한다.

7년째 되는 봄 어느날 글공부에 지친 회정은 꿈에 본 한 아릿다운 녀인의 얼굴을 그려보며 개울가를 천천히 거닐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위우에 수건이 걸려있어 그 바위아래 개울가를 굽어보니 꿈에 본 아릿다운 각시가 머리를 감고있었다.

회정은 꿈에 본 보덕각시가 틀림이 없다고 단정하고 《보덕각시!》하고 찾았으나 녀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태연하게 개울가를 지나 큰 바위돌을 돌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회정은 얼을 잃고 저녁해가 지는것도 잊어버리고 개울가에 서서 녀인이 머리를 감던 담소만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잔잔한 수면우에 아릿다운 녀인의 고운 모습이 언뜻 비치였다가는 사라졌다.

회정은 그 어방 어디에 보덕각시가 와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보덕각시의 모습은 다시 볼수 없었다.

허무한 심정을 안고 어슬저녁에 빈 방으로 돌아온 회정은 보덕각시생각에 글공부마저 잊고 드러누웠다.

잠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천정만 쳐다보고있는데 보덕각시가 금시 보는듯 눈앞에 나타나더니 《성현은 녀자를 곱다고만 생각해도 죄를 짓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10년을 작정하고 공부하는 서생이 그렇게 외람된 생각을 하고서야 무슨 글공부가 되겠느냐.》라고 호되게 꾸짖으며 《그대가 지금까지 공부를 했다니 내가 글 안짝을 지으면 바깥짝을 지으시오. 도가 텄으면 그대의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더니 글 안짝을 내는것이였다.

《그대를 내가 모시게 되면…》하고 보덕각시가 글 안짝을 내자 회정은 얼른 붓에 먹을 찍어 그 종이에 《반드시 부귀영화하리라》라고 써넣었다.

보덕각시는 아무말없이 밖으로 나가더니 뜻밖에 회초리를 들고 나타나 《그게 무슨 선비의 글인가. <그대를 내가 모시게 되면 10년공부는 허사로 되리> 이렇게 글짝을 채워야 선비답지. 7년간 배웠다는 선비가 헛글을 배웠군.》

하고 머리도 들지 못하게 도리에 맞는 꾸중을 하더니 정신을 차리게 한다며 회초리로 사정없이 종아리를 치는것이였다.

종아리에 회초리가 닿는 순간 아이고 소리치며 펄쩍 일어나니 그것은 꿈이였던것이다.

제 정신을 차린 회정은 순간이나마 해이되여 10년을 기한으로 도를 닦아오던 그 모든 일을 허사로 버릴번 했던 뉘우침을 간직하고 보덕각시의 뜻을 따라 글공부에 전심하였다.

회정은 그날부터 보덕각시가 사라졌던 바위벼랑에 다락을 짓고 돌바위구멍에서 침식을 하며 10년을 고스란히 공부하여 불도에 능통한 이름있는 학자가 되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개울가 맞은켠을 바라보니 자그마한 암자가 절벽에 매달려 불면 날아갈듯 대롱거리고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사진에서 많이 보아오던 보덕암이라는것을 알아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우리는 힘겨운줄도 모르고 가파로운 산길을 따라 보덕암에 올랐다.

거대한 힘을 가진 장수가 미리 집을 지어놓았다가 바위벽에 붙여놓은것만 같이 거침새없이 산뜻한 보덕암자가 20m도 넘는 아슬한 절벽중턱에 하나의 가느다란 구리기둥에 떠받들려있는 모습이야말로 보면 볼수록 신기함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우리가 마루바닥을 밟을 때마다 울렁울렁거리는데 어찌 보면 금시 무너질상 싶었으나 몇백년 지나오면서 눈비와 비바람인들 얼마나 쳤으련만 예나 다름없이 보덕암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있었다.

이런 절벽에 집을 지을 생각을 한것만도 놀라운데 집을 지어놓은 구상과 솜씨 또한 볼수록 놀라왔다.

참으로 보덕암은 자연경치와 건물을 하나로 조화시켜 지은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구상과 솜씨를 잘 보여주는 기이하리만치 특이한 건축물이였다.

머리를 들면 발아래로는 만폭동 파란 물이 굽이굽이 흘러내리고 향로봉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상쾌하고 날듯 한 기분은 관광객들에게 가슴을 벌리고 맑은 공기를 들여마시게 한다.

우리를 안내한 해설원은 잠시 땀을 들이자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보덕암속에는 돌굴이 있어 일명《보덕굴》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 옛날 만폭동에는 열일곱살 처녀 보덕이가 살고있었다.

그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늙은 아버지와 같이 부지런히 땅을 뚜지며 살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땅을 뚜져도 가을이면 낟알을 지주에게 다 빼앗기고 빈 자루만 털고 나앉는것이 보통이였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 늙은 아버지가 앓아눕게 되였다.

보덕이는 늙은 아버지에게 죽을 쑤어드리려고 했으나 항아리속에는 몇알 안되는 보리가 있을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할수없이 그아래 마을 아는 집에 가서 쌀을 좀 꾸어달라고 하였으나 그 집 역시 가난하여 쌀은 없고 맨 콩을 두어되박 주는것이였다.

보덕은 그것이나마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주림과 피곤에 지쳐서 그만 바위에 의지한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백발로인이 와서 보덕을 깨우며《애기야, 일어나라! 아이 가엾어 …콩을 가지고야 어떻게 앓는 아버지에게 죽을 쑤어 드리겠니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것이였다.

《그래 너도 배가 퍽 고프겠구나. … 그 못된 지주놈이 쌀을 다 빼앗아갔구나.》

《할아버지 어데로 가세요?》

보덕은 두눈을 말똥거리며 물어보았다.

《나도 이 산속에서 산다. 그런데 애야, 참 좋은 수가 있다. 이 콩을 가지고 초롱꽃이 핀 굴속에 가서 밥을 지으면 쌀밥이 되는 수도 있을런지 모른다.》

《네?!》

쌀밥이라는 말에 보덕이가 《네?!》 하고 눈을 떠보니 그것은 꿈이였다.

보덕은 얼른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그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옛날부터 그런 전설이 있으나 그 꽃은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하면서 네 행동에 혹 잘못한 일이 없는지 그것부터 따져보고 자신이 있으면 초롱꽃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보덕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는 동안에 별로 잘못한것은 없으나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깨끗이 쓸라는 아버지말씀을 그날 아침만은 잊은것이 생각나서 속으로 몇번이나 뉘우치면서 마당을 깨끗이 쓸고 뒤산으로 올라가 초롱꽃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초롱꽃은 바로 보덕이가 있는 집뒤 굴앞에 피여있지 않는가!

보덕은 얼른 콩을 갈아서 가마에 앉히고 그 굴앞에 가서 세번 절을 하고는 밥을 지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그것은 콩밥이 아니라 하얀 찹쌀밥으로 되였다.

그 밥을 먹은 그의 아버지는 병이 나았을뿐만아니라 그후부터는 그 굴속에서 밥을 지으면 나물죽도 밥으로 되는것이였다.

이 신기한 소문을 들은 어떤 게으름뱅이 스님이 와서 동냥쌀을 한알 넣고 밥을 지었더니 가마속에는 말똥이 하나 가득하게 차있었다.

그날 밤 백발로인이 나타나서 스님에게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의것만 뺏아먹는 너같은 놈에겐 말똥도 과하다.》하고 사라지는것이였다.

그래서 보덕이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보덕암》이라고 한다. …

불면 날아갈것처럼 벼랑에 앉은것 같기도 하고 매달려있는것 같기도 한 고색창연한 보덕암은 주위의 자연경치와 잘 조화되여 만폭동의 절경을 한층 더 돋구어준다.

보덕암이 없으면 만폭동절경에 손색이 갈듯, 만폭동이 없으면 보덕암의 절묘한 품위가 떨어질듯, 자연경치와 인공암자가 서로 잘 어울려있다.

이 하나만 가지고도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얼마나 재능있는 인민이였는가를 충분히 알수있다.

고려시인 리제현은 자기의 시에서 보덕암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고 한다.

      차거운 바람은 바위틈에 풍기고

      골짜기에 담긴 물은 깊고 푸르고나

      지팽이를 짚고 우러러 벼랑을 보니

      보덕암은 구름을 타고 나는듯 하여라

                …  …  …

보덕암은 만폭동밑에서 올려다보아도 좋았는데 이렇게 보덕암에 올라와서 내려다보는 주변경치 또한 얼마나 장관인지 더 표현할 말을 찾을수 없을 지경이였다.

우리는 떠나고싶지 않은 보덕암을 내리여 다음 명소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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