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20-07-10    조회 : 850
 
백인준선생과 금강산

백인준선생은 우리 나라의 문학예술전반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재능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시와 가사, 희곡, 영화문학 등 문학예술전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다재다능한 작가, 창작의 능수였던 백인준선생은 천하명승 금강산을 무대로 한 작품들을 훌륭히 완성하여 금강산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 작품들로서 영화문학 《금강산처녀》와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들수 있다.

특히 영화와 가극에서 나오는 노래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는 금강산을 찾는 우리 인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중의 하나로 되고있다.

백인준선생이 이런 훌륭한 명작들을 창작한 대문호로 자라날수 있은 비결을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창조과정에 있었던 한가지 사실을 통하여 전하려고 한다.

주체62(1973)년 4월 어느날 백인준선생을 비롯한 창작가, 예술인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그때 그들은 예술영화 《금강산처녀》를 《피바다》식가극으로 완성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창조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는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 정형을 알아보시기 위해 몸소 창조현장을 찾아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매 장면장면의 성과와 노래들의 우단점을 하나하나 밝혀주시며 주의깊게 작품을 보아주시고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가극 《금강산처녀》의 제목을 《금강산의 노래》로 고치고 이 가극을 혁명가극으로 하여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때 원작인 예술영화 《금강산처녀》의 영화문학을 쓴 백인준선생은 정말 기쁘기 그지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영화문학을 창작했지만 그것을 옮긴 가극이 혁명가극으로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고민도 컸다.

가극이 관중들에게 응당한 감흥을 주지 못하였는데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있었던것이였다.

예술영화 《금강산처녀》에서는 금강마을의 순이가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있지만 신인을 육성하는데서 나타난 보수주의와의 갈등도 중요하게 취급하고있었다.

그러나 가극에서는 이 보수주의와의 대립선을 없애버리고 순이오빠와 아버지와의 비통한 생리별과 감격적인 상봉의 이야기만을 끌고가면서 눈물의 금강이 어떻게 락원의 금강으로 되였는가를 보여주도록 하였다.

사회주의현실주제나 수령님의 덕성을 담은 작품인 경우 갈등이 없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수 있다고 가르쳐주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리별과 상봉의 감정선을 기본으로 엮어나가기는 하였으나 작품의 감정이 올라가지 않아 안타까워하고있었다.

이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의 고민을 순간에 포착하시고 회상장면에 아이가 죽는 선을 설정하였기때문에 초점이 명백치 못하고 주인공과 안해의 리별이 큰 비극으로 충격을 주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황석민과 안해가 생리별하는데 초점을 두고 등장인물과 함께 관중이 비극속에 파묻히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갈등없는 작품에서는 극의 초점이 기본이라는것을 밝혀주심으로써 갈등이 없이도 가극을 명작으로 만들수 있는 방도를 빛나는 예지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

이것은 아직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새로운 극작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완성된 작품이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이다.

금강산주제의 작품들외에도 선생이 창작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그는 우리 문학예술에서 수령형상창조의 첫 선구자의 한사람으로서 송가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영화문학 《민족의 태양》을 비롯한 훌륭한 작품들과 영화문학 《최학신의 일가》, 《성장의 길에서》, 《금강산처녀》, 가사 《새별》,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풍자시 《벌거벗은 아메리카》를 비롯한 주체문학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한 명작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또한 《꽃 파는 처녀》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와 가극, 연극 등에 옮기는 사업과 5대혁명가극창조사업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웠다.

하기에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5대혁명가극의 가사는 거의다 백인준선생이 썼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작가는 천성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하다면 그의 창작적재능이 천부적이여서 대문호로서의 영광을 누리였는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평범한 작가였던 그에게 창작적열정과 지혜를 주시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학과 철학의 세계를 안겨주시며 동서고금의 이름있는 문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키워주신 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하기에 백인준선생은 《영원한 삶의 품》이라는 시에 이렇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나에게 영원한 삶을 안겨주신분

나에게 문학과 철학을 배워주신분

그이의 제자임을 자랑합니다

그이의 전사됨이 행복합니다

 

진정 위대한 스승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 그이께 모든 운명을 의탁하고 그이의 모든것을 따랐기에 백인준선생은 주체예술의 당당한 창조자로,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로 성장할수 있은것이다.

오늘도 우리 인민들은 선생이 창작한 노래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를 흥겹게 부르며 금강산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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